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례자 요한 (문단 편집) == 생애 == 요한에 대한 이야기는 루카 복음서에 나온다. 요한의 아버지는 [[즈카르야]](축일 [[11월 5일]])라는 유대교 [[사제(성직자)|사제]]였고, 어머니는 [[엘리사벳]](축일 [[11월 5일]])이었다. 결혼한지 오래되었어도 엘리사벳은 아이를 갖지 못하였으나 천사를 만난 다음 요한을 임신하게 되었다. 이후 제비를 뽑아 성전에서 기도할 자로 선발되어 홀로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던 중 천사 가브리엘을 만났고, 그에게서 메시아의 선도자를 낳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게된다. 하지만 엘리사벳의 [[임신]]과 자식이 생긴다는 예언에 대해서 의심을 품은 즈카르야는[* 사실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히 의심할만한 일이었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이미 고령의 노인들이었다. 여성 노인의 몸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현대 기술이 발전한 지금에서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다. 반대로 이 구절은 같은 상황에 처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대가로 예언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되었다. 그 후 엘리사벳이 아들의 이름을 천사의 계시대로 요한으로 지으려 하였으나, 조상의 이름 중에서 하나를 따서 이름을 짓던 당시 유대인의 관습에 맞지 않는다며 친척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결국 친척들은 아이 아버지인 즈카르야에게 아이 이름을 물으러 갔고, 즈카르야는 토판을 가져오게 하여 아이의 첫 이름을 '요한'이라고 쓰자마자 입이 부드러워지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엘리사벳이 요한을 임신하였을 때 그녀의 친척인 [[성모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예수를 축복했는데, 예전에 엘리사벳이 임신 중이던 때에 마리아와 만난 적이 있었다. 이때 태아가 뱃속에서 뛰놀며 춤을 추는데 어머니인 엘리사벳이 놀라워하며 "당신은 지상 모든 여인들 중에 복되신 여인이고, 태중의 아이 또한 복되십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구절에서 성모송의 내용이 만들어졌다. 다만 신학자 제임스 던에 따르면 이 초기 일화는 대단히 감동적이긴 해도, 루카 복음서의 일화들에 비해서는 역사성과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한 내용이다. 탄생 이후 성장하여 소년기에 일찌감치 광야로 가서 [[낙타]] [[가죽]] 옷을 입고, [[메뚜기]]와 [[꿀]]을 먹으면서 고된 생활을 하고, 30세 때부터 요단 강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 루카 복음서에서의 요한의 활동은 [[티베리우스 1세]] 15년(A.D. 29)부터 시작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제사장의 아들이었기에 얼마든지 아버지의 직분을 이어받아 당대 유태인 사회에서 특권층으로 호의호식할 수도 있었지만, 요한은 그런 길을 마다하고 '광야에서 울부짖는 소리'로서 메시아의 등장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 [[기독교]]의 4대 복음서에는 예수 또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이 때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처지인데, 어찌 선생님이 저에게 오십니까?' 라며 예수가 자신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이라 자신이 오히려 그에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또한 자신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이 나중에 올 것인데,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는 [[성령]]의 [[불]]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도 말했다.[* 또한 "그분(예수)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복음 3장 30절)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구절은 기독교에서 요한의 겸손함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말로 인용된다.] 이후 세례자 요한은, 동생을 죽이고 동생의 아내를 취한 헤로데([[헤로데 안티파스]]) 왕과 그의 아내 헤로디아를 비판했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다. 헤로디아가 왕의 생일 잔치에서 딸인 [[살로메 3세]][* 복음서에선 이름이 안 나온다. 헤로디아의 딸의 이름이 살로메라는 것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기록에만 나온다.]에게 춤을 추게 하고, 이에 매우 만족한 헤로데는 살로메에게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한다. 이에 헤로디아는 살로메를 통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게 된다.[* 판본에서는 헤로데 왕은 세례자 요한을 흠모했으나 이를 헤로디아가 매우 싫어해서 직접 죽여버리라 지시한 내용도 있다.] 결국 헤로데 왕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지시하고, 감옥에 있던 요한은 그대로 목이 달아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된다.[* 마르코 복음 6장] 세례자 요한의 사후에는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감옥에 갇혔을 때의 세례자 요한은 그 이전까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예수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마태오 복음에서 감옥에 갇힌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묻는다.[* 이전에도 요한의 제자들이 "우리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금식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냐"며 예수에게 말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는 세례자 요한이 "독사의 자식"이라며 경멸하던 그 바리사이파들을 요한의 제자들이 동일시하며 오히려 스승인 요한이 그토록 높였던 예수에게 따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비록 요한 본인이 한 일은 아니지만, 제자는 스승을 닮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하다. 이 대목에 관해서는 "확신이 흔들린 것은 세례자 요한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었고, 예수가 메시아임을 변함없이 확신했던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 그들에게 직접 예수와 만나도록 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소수 의견도 있다.] 이에 예수는 자신이 행한 기적들을 언급하며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자는 행복하다."라고 답변한다. 그렇게 복음 전파와 세례에 열정적이고 믿음이 완고하던 사람이 저렇게 변하다니 조금 이상한 일일 수도 있지만, 이는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예수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느 사람과 같은 인간의 배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었고, 그렇기에 평생을 바쳐 굳게 신앙해 온 존재를 믿으며 말씀을 전파해오다가 감옥에 갇혀 끔찍한 처벌만 기다리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의 도움조차 없었기에, 여느 사람처럼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건 종교마다 해석이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에서는 이 해석을 펼치고 있다. 이는 예수의 제자들 또한 같다. 예수 옆에서 그토록 많은 기적을 봐왔지만 정작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는 대부분의 제자들이 외면하기도 했다. [[12사도]] 중 [[사도 요한]] 단 한 명만 빼놓고 모조리 도망쳤으니까. 심지어 사도들의 수장인 [[베드로]]는 목숨을 부지하려고 스승인 예수를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하기까지 했다.] 예수 또한 인간으로서 태어나 죽음을 맞았으나, 예수는 이미 하느님과 성령으로 하나되어 인간의 몸으로 내려온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어떠한 유혹이나 고난에도 굴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 앞에서 '''"여자에게서 난 가장 큰 이는 세례자 요한이지만, 천국(하늘 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 사람이라도 저(세례 요한)보다는 크다"'''라고 말한다. 이는 하느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된 뒤에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은 그 이전의 인물인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크다는 의미이다. 세례자 요한은 선구자로서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메시아의 말씀과 행적을 직접 듣고 보지는 못하였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